우습게도 문화 전시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서야 <사유의 방>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교과서로만 보던 반가사유상을 실제로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꼭 봐야겠다고 결심을 한 것이 국립중앙박물관 로비에서 홍보자료를 봤을 때였다. 그러니 <사유의 방>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전혀 배경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사유의 방>에서 느낀 감동이 더 크게 다가왔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만약 직접 <사유의 방>을 보고 느끼고 싶으신 분들은 이 글을 보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스포일러 주의)
최고의 전시, 그 자체였던 <사유의 방> - 메타버스는 아직 멀다
메타버스가 내 전공 분야는 아니지만 한때 감각 정보 처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자 했던 나로서 메타버스 존재는 그리 달갑지 않았다. 코로나19 덕분에 가상공간의 활용이 정말 예상했던 것보다 일찍 앞당겨졌고 그것이 지니고 있는 중요성도 매우 잘 피력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메타버스가 실공간이 지니고 있는 장점을 모두 구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가 주춤해지자마자 사람들은 밖으로 나섰다. 카페만 봐도 사람들은 그 카페의 공간에 속하기 위해 음료값으로 그 대가를 대신 지불한다. 그리고 <사유의 방> 전시가 실공간이 지니고 있는 유일한 장점을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했다고 생각한다.
<사유의 방>에 들어가기 전 그 앞에 있는 전시 설명서를 읽고 미리 <사유의 방>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지 상상했다. 저 방에 들어가면 유리 상자 안에 있는 반가사유상 두 점이 나를 반겨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가사유상을 그전에 본 적이 없으니 크기도 잘 몰라서 내가 반가사유상을 내려다보며 그것을 자세히 훑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내 생각의 반전이었다. <사유의 방>에 들어가고자 하니 한 문장이 적혀져 있는 글귀와 함께 검은 벽이 가로막혀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나는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했다. 들어갈수록 어두컴컴했다. 왼편에 있는 파도의 모습을 담은 것 같은 미디어 아트 영상과 파도 소리와 비슷한 소리만이 존재했다. 그리 길지 않은 복도를 걷다 다시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니 갑자기 천장이 높아지면서 은은한 따뜻한 간접조명과 함께 나뭇바닥이 보였다. 그리고 더 오른쪽으로 몸을 꺾어야 저 멀리서 고요히 웃음 짓는 반가사유상 두 점이 보였다. (사실 너무 멀어서 그리 시력이 좋지 않은 내게는 반가사유상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그냥 배경지식으로 반가사유상의 표정을 유추한 것이다.) 오로지 반가사유상들과 나만 그 공간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넓은 나뭇바닥을 사이에 두고 둘이 존재한다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었다. 그리고 그 한 존재가 따뜻하게 나를 반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내가 반가사유상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닥에 경사가 있어 반가사유상은 나보다 자연스럽게 더 높은 위치에 있었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어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우러러보는 것도 아니고 내려다보는 것도 아닌 그저 바라보는 것보다 약간 위로 향하는 시선. 존경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경사가 진 바닥 덕분에 그것에 더 다가갈수록 더 느리게 반가사유상에 다가가는 것 같았다. 다가가기 힘든 존재인 것처럼 인식되었다.
반가사유상은 유리상자 안에 있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살결을 나와 공유하고 있는 공기에 노출하고 있었다. 그동안 지나온 풍파를 모두 드러내는 것 같았다. 덕분에 나는 반가사유상들을 샅샅이 볼 수 있었다. 존경의 시선을 유지한 채.
그렇게 반가사유상 주위를 한 바퀴 돌며 관찰하고 난 뒤 출구로 향해 내려갔다. 다시 뒤돌아보면 반가사유상들이 여전히 고요한 웃음을 지으며 가만히 있었다. 반가사유상이 예상했던 것보다 커서 갑자기 일어서서 다가올 것만 같았다. 다시 고개를 돌려 좁은 통로를 통해 출구로 나갔다. 밝은 색의 돌들로 둘러싸인 국립중앙박물관 모습 덕분에 <사유의 방>에서 보았던 모든 일들은 꿈만 같았다.
이 전시를 메타버스에 구현할 수 있을까. 반가사유상이 갖고 있는 고유의 금속성조차 구현하기 힘들 거이다. 그리고 공간을 활용해 만든 1) 환기를 통한 공간 변화 2) 자연스러운 상하관계 형성은 더더욱 구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경사로 인해 다가가기 힘들다는 느낌을 자연스럽게 주는 것은 현재 기술로 구현조차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아쉬었던 점이 하나 있다. 후에 다시 한번 찾아갔을 때에는 주말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반가사유상 앞을 둘러싸고 있어 처음에 느꼈던 감동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사유의 방>을 진정으로 즐기고 싶다면 평일에 가는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문화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후기] 생명과학자는 생명을 죽인다 (0) | 2023.02.04 |
---|---|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 빈미술사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후기 (0) | 2023.01.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