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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후기] 생명과학자는 생명을 죽인다

by 지현한 지현 2023. 2. 4.

 얼마 전에 종영한 <알쓸인잡> 정말 즐겁게 보았다. 연구실을 나가지 않고 있는 대학원생에게 매주 금요일을 기다리게 유일한 이유였다고 해도 무방하다. <알쓸인잡> 이전에 했던 <알쓸신잡> 시리즈 역시 하나도 빼먹지 않고 즐겁게 봤기 때문에 <알쓸인잡> 역시 내게 최적인 프로그램이 있었던 같다.

 <알쓸인잡> 통해 새롭게 얼굴을 비치신 분들 모두 프로그램을 다채롭고 알차게 구성해 주셔서 호감이 갔는데 그중에서도 유독 심채경 박사님께 마음을 빼앗게 같다. 심채경 박사님이 내가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꿈인 천문학자를 이루신 분이셔서 처음에 마음을 빼앗겼고 뒤로 하시는 말씀들 중에 마음을 울리는 말씀들이 많아서 마음을 더욱 온전히 빼앗기게 되었다.

 프로그램 중에서 심채경 박사님의 말씀 중에 가장 마음을 울렸던 것은 자신에게 10 만점에 10점을 주시는 말씀이었다. 알쓸인잡 마지막 화에서 어떤 시청자분은 장면을 보고 심채경 박사님이 모든 이에게 10 만점에 10점을 주게 해주셨다는 말도 남겨주셨는데 말이 정말 맞는 같다. 끊임없는 자기비판은 필수불가결이지만 때로는 그것 때문에 가장 힘들어하는 상황이 많다. 역시 그런 경험이 많았기에 심채경 박사님을 자연스레 존경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 심채경 박사님께서 지으신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책을 직접 사서 읽었다. 그분이 책에는 어떤 내용을 담아내셨는지 매우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워낙 문장도 말씀하시는 것만큼 잘하셔서 읽는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연구자들을 보다듬어주는 책이다"

 

 내가 연구생활 때문에 힘들었던 부분이 많아서 더욱 연구에 관해 말씀해 주신 문장들이 많이 와닿았던 같다.

 

 "오늘 내가 일은, 애써서 받은 '연구 면허' 별무소용인 종잇장이 되지 않도록 연구자로서 일을 하는 것뿐이다. 평가하고 평가받는, 누구나와 같은 속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뿐이다. 내일도, 그리고 모레도." (p.36)

  문장이 연구자로서 삶을 살아갈 때의 모습을 가장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분야마다 학위가 가지는 의미, 학위로 나아갈 있는 진로의 범위와 그의 한계 정도 등은 매우 다르다. 하지만 경험은 생명과학 분야에 한정되어 있으니 분야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생명과학 분야는 기업체이든, 정부 연구소이든 상관없이 최소한 박사는 있어야 자신이 연구 책임을 맡을 있다. 석사도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미 박사라는 학위는 필수적으로 갖고 있어야 다음 진로로 넘어갈 있다는 생각이 만연한 분야여서 역시 생각을 바탕에 깔고 박사 학위를 각오를 했었다. 하지만 최근 교수 시장이 많이 작아졌고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박사 대비 취업, 교수 임용 등이 불투명해졌다. 박사를 갖고 있다고 당장 연구를 있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생명과학 분야는 경제력이 탄탄해야 한다. DNA 염기 서열 하나 읽는 것도 돈이다. 실험에 바이러스 역시 외국에서 구하면 배송비까지 합해서 몇십만 원이 되는데 그걸로 평생 있는 것도 아니다. 소모품의 비율이 상당하고 좋고 최신 기술로 논문의 특별함을 부각시켜야 한다.

 그러니 교수가 되어도 자신이 연구에 뜻이 있다면 누구보다 더욱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나는 대학원에 가서 모습을 직접 옆에서 목도했다. 교수님들이야말로 많은 걱정들을 마음속에 안고 사시는 분들이시다. 하지만 결과가 달에 하나씩 나오는 것도 아니다. 년에서 1 걸쳐 열심히 노력해도 목표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목표했던 결과를 부정하는 결과라도 나오면 다행이다.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가는데 생명과학은 자연의 현상을 보다 보니 자연의 시계에 맞춰 진행되는 현상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시간에 기대 실험을 하고 결과를 보고 다시 실험을 하고 결과를 보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평가의 시간이 다가와 있다. 과제가 보통 1 단위이기 때문이다. 과제가 있어야 학생들 월급도 있다. 정말로 박사 학위는 '연구 면허' 불과했다. 그것이 빛을 발하려면 매일을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고독하게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한 내면을 끄집어낸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의 직업은 정해진 '시간' 성실히 채우는 일이고, 또다른 사람의 직업은 어떤 '분량' 정해진 만큼 혹은 그에 넘치게 해내는 것이라며, 나의 직업은 어떤 주제에 골몰하는 일이다." (p.78)

 , 연구에는 끝이 없다는 것이다. 골몰하고 계속 골몰해야 한다. 다른 의견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비판하고 수용하며 다시 골몰해야 한다. 그래서 연구로 돈을 받는다는 것이 참으로 애매하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게 때로는 억울하기도 했다. 대학원생일 나는 운이 좋아 과제를 많이 갖고 계신 교수님 연구실에 들어가 돈을 많이 받는 편에 속했다. 그래도 나는 최저시급을 받지는 못했다. 내가 일하는 시간을 꼼꼼히 계산하면 비참해진다. 그러면 시급은 5,000원도 나오지 않는다. 나는 공부를 하는 학생이라는 입장 하에서 그렇게 최저시급도 받지 않아도 괜찮은 상황이었다. 법에서 나를 사람이라고 명시하지 않으니. 정말 기숙사에 돌아가서도 잠들기 전까지 주제에 몰입해 누웠다가도 다시 일어나 논문을 찾아보았다. 물론 과정이 즐거우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그렇게 했던 것이다. 하지만 너무 지쳐 SNS 보고 있는데 벌써 취직해 돈을 보면서 놀러 다니는 친구들을 보니 순간 드는 감정은 참담했다. (이래서 SNS 보면 된다. 그냥 SNS 하면 된다.) 나는 열심히 하고 있는데 그에 대한 대가가 없는 느낌이다. 박사 학위도 이제 예전에는 보장해 줬던 일자리를 보장해 주지 못하는 느낌이 크게 다가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세상이 내가 이런 하찮아 보일 있는 일에 몰입해도 돈을 준다니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질 수도 있었다. 당시에는 참담함이 눈앞을 가렸나 보다. 더욱이 문장을 읽으니 연구 시간을 재면서 '오늘 너무 많이 했다. 내일은 적게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거나 분량을 매일 똑같이 배분한 과거의 내가 참으로 어리석어 보였다. 아무도 모르는 일에 어떻게 일에 얼마만큼의 시간과 분량이 필요할지 모르는데 과거의 나는 숫자에 집착했다. 너무 무리하면 된다는 강박 때문에. 결국 지킬 없는 강박인데 지킬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는 어리석은 악순환에 빠졌던 것이다.

 

 그렇다. "다들 자기가 좋아하는 연구 하고 싶어서 세계에 발을 내디딘 사람들이다. 하지만 평생 놀고먹어도 만큼의 돈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야 월급도 계약 기간도 과제에 달린 박사후연구원들에게는 학문의 세계가 그렇게 신성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다." (p.147)

 

 하지만 나는 다시 연구를 하고 싶다. 내가 연구하고 싶은 이유는 아픈 사람들을 아프지 않게 하고 싶다는 이유도 있고, 내가 너무 궁금해 미칠 같다는 이유도 있다. "연구는 내가 인류의 대리자로서 행하는 것이고, 결과를 논문으로 쓰는 것이다. 그러니 논문 속의 '우리' 논문의 공저자들이 아니라 인류다." (p.265) 사람들은 내가 실험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려주면 엄청 경악해한다. 특히 쥐의 뇌를 꺼내기 위해 마취제를 넣은 락앤락 통에 쥐를 넣은 다음 생리식염수와 고정액을 심장에 꽂은 바늘을 통해 온몸을 돌게 다음 이미 죽은 쥐의 부분을 가위로 잘라 머리만 남기고 머리를 조물딱거리며 포셉으로 두개골을 깨서 제거하는 과정. 나도 그때의 냄새와 어쩔 없이 조물딱거릴 느껴지는 촉감이 역겨워 결국 동물 실험을 그만뒀다. 하지만 그걸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연구가 인류에 도움이 거라는 믿음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기 어려워하는 일들을 해내는 사람들. 이렇게 힘겨운 동물 실험이 아니더라도 많은 시간과 힘이 들어가야 하는 연구를 자신의 시간과 힘을 희생하여 인류의 대리인으로서 하는 사람들. 연구자가 그런 존재이다. 나는 그래서 세상이 연구자를 정말 존중해 주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억누를 없는 욕망으로 연구를 하겠지만 말이다. 생명과학자는 인류를 살리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아닌 것들을 죽여야만 한다. 내가 동물실험이 힘들어서 하지 않더라도 며칠 뒤면 세포들을 갖고 놀듯이 다뤄야 한다. 그런 아이러니함이 생명은 고귀하다는 신념과 충돌해 많이 힘들기도 했지만 신념과 아이러니함의 타협점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다시 인류의 대리자로서 인류를 공저자로 하는 논문을 있다는 가능성을 다시 쥐게 되었다.

 

 이렇게 연구자로서의 삶에 대한 회의감에 지쳐있던 나를 다시 위로해 주고 보다듬어준 덕분에 연구자로서의 삶을 걸을 자신감을 되찾게 되었다. 대학원이 어떤 곳인지 알고 싶은 사람들이 읽기에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 이렇게까지 해야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충분히 여유롭게 다른 진로를 생각해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미 대학원에 들어갔다면 책으로 위로라도 받았으면 좋겠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연구를 하고 있다는 공통분모만으로도 연구자로서 어쩔 없는 고독함이 조금이라도 흐려질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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